2009년 제주도 여행기의 그 마지막.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 동안 엄청나게 바쁜것도, 신변의 변화가 있었던 것도,
그렇다고 군대를 한번 더 갔다온 것도 아니다.
그냥 잊고 살았었다.
어느 여름날의 기억에 불과 할지 몰라도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 지워져 버리기전에 두고두고 담아놓고
보고싶어서 이렇게 마지막 매듭을 지어본다.
어제 밤의 술판의 기억이 날까말까하다.
감귤막걸리에 치킨에 등등등
사람은 줄어도 여전히 벌어지는 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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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색다른 광경.
여행도 끝나가는 마당에 경비절약을 위해서 한방에서 다 같이 잤더니
눈을 뜨니 여자들 밖에 없다.
(뭐 남자 하나 때문에 방을 하나 더 잡을 수는 없으니..)
이거 은근히 뻘쭘하네...
뭐 이제는 가족같다.
그래서 민낯도 어색하지가 않다.
눈을 뜨고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하려했으나.
모두들 잠에서 깬다.
나때문에 잠에서 깬거같아서 괜히 미안하다.
어쨌든 대충 씻고 정신을 차려본다.
정신을 차리니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시간~
정말로 이젠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완 전 아 쉽 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하루 더 남아있기로 결정.
후에 안 이야기지만 동영상도 찍고 뭐 스노클링도 했다나...
암튼 부러웠음.
여튼 아쉬움을 뒤로하고 여차저차 물어봐서 버스정류장을 찾는다.
친절하게도 그녀들도 아쉬운지 민낯으로 마중을 나온다.
근데 버스 드럽게 안온다....
한창을 그렇게 정류장에서 수다를 떨다보니
안온다 안온다 하던 버스도 어느새 눈앞에..
이제는 진짜 안녕.
버스 창 너머로 점점 작아지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아쉬움만 가득하다.
제주도의 한적한 길을 지나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고 다시 한번 창밖을 보니
어느새 시내에 와있다.
버스에 앉은 할아버지가 패니어를 신기해 하신다.
하긴..
자전거 없이 딸랑 패니어만 들고 다녔으니...
할아버지와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북적거리는 버스 승객들 사이로 제주항이 보이길래
급하게 내린다.
아쉬움이 남아서 인지 무작정 걸어본다.
걷다보니 딜레마에 빠진다.
비행기? 배?
그렇다. 무작정 나와버렸던 것이었다.
일단 가까운 제주항으로 향하기로 한다.
제주항 근처에 와서는 어떤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이상하리만큼 한적한 제주항.
가족과 함께 왔다는 아주머니는 가족들이 다른 곳에 관광을 가있는 동안
혼자서 제주도를 한번 돌아보고자 나왔다고 한다.
계속되는 이런저런 여행이야기.
딸래미가 나랑 나이가 비슷하다고 말씀해주셨던듯.
서울이었나? 경기도였나?
암튼 식당을 하신다고 한번 들르면 밥한끼 주시겠단다.
나는 보답으로 사진을 찍어 여행기에 올려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주머니 사진은 어디갔는지...
처음 아주머니와 마주치기 전에 뒷모습만이 남아있다는..
(그러나 여행을 갔다온 후 카메라가 물먹었는지 고장이 나버리고
사진도 많이 잃어버려서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2년 만에 약속을 지키네요. --;)
아주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제주항으로 들어선다.
목포로가는 퀸메리호는 하루에 단한대.
4시에 출발한다길래 좀 늦은감이 있어서
일단은 자전거도 찾을 겸 용두암 하이킹쪽으로 향한다.
먼저 PC방에 들어가서 4시 이전의 비행기를 확인해본다.
올때보다 비쌌지만 그래도 서울까지 한방에 가니..
내일 비행기도 확인해서 함덕에 있는 그녀들에게 일러준다.
하루만에 만난 자전거.
괜히 반갑다. 자전거 포장시에 덧댈 박스를 챙겨서 묶어놓고
김기사님께 완주증을 받는다.
득템!!
했다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 만나서 좋은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더욱 진해진다.
(사진에 손좀 댔더니 휠이 무슨 카본 하이림 같이 나왔네..)
완주 명예의 전당에서 사진도 찍어본다.
(사진찍어줄 사람이 없다....)
여튼 배가 고프다.
자전거를 타고 맥도날드로 향한다.
그런데 제주 시내는 한적한데 맥도날드만 미친듯이 붐빈다.
도저히 안에서 먹을 수가 없어서
포장을해서 맥도날드 밖으로 나와서 길에 앉아서 먹는다.
그지꼴이 따로 없다.
그렇게 우걱우걱 햄버거를 먹고 공항으로 향하려던 찰나.
페달에서 딱딱 소리가 난다.
아무래도 페달안에 있는 베어링이 깨졌거나,
우중라이딩으로 인해서 어딘가 문제가 생긴게 분명하다.
일단 근처 샵으로 향하는데 무려 스캇간판이....
기쁜맘에 들어가본다.
나말고도 다른 여행자들이 자전거 정비를 받고 있다.
사장님께서 요래저래 만져보고 한바퀴 슉 돌아보고 오시더니
아무래도 페달 문제란다.
걍 서울가서 페달하나 사기로 맘먹고
튜브가 싸길래 튜브를 하나 사고 다시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제주도 답게 미친듯이 바람이 분다.
거지꼴을 하고 공항에 도착하니
그러나 김포 가는 비행기는 안드로메다로...
그 사이에 매진되버려서 티켓이 없다.
남은건 아시아나와 대한한공뿐.
아시아나와 대한한공을 타버리면 심각한 예산초과...
할수 없이 다시 제주항으로 향한다.
제주항에 도착하고 생각해보니 지인들 선물을 하나도 안샀다.
미리미리 좀 사둘걸..
좀 특별한 선물을 사고 싶지만 살만한게 없어서 감귤초콜릿만 잔뜩산다.
목포로 향하는 퀸메리호 표를 끊고
배를 타러 들어간다.
헉...이런 낭패가...
배타기 직전에 보니 면세점이 있다.
젠장...선물가게도 안쪽이 훨씬 많다.
두둥.
이렇게 큰 배는 처음 타본다.
자전거를 어디다 싣냐고 물어봤더니 그런거 없단다.
자전거도 싣는데도 돈받아놓고.
게다가 저 계단을 들고 올라가야 한단다.
패니어+자전거+선물
아 무겁다.
자전거를 들고 올라가서는 자동차 주차장 한켠에 세워놓는다.
자전거를 묶다보니 어느새 배가 출발한다.
직원들이 나와서 손을 흔들어준다.
(사진엔 준비중)
진짜 안녕.
자전거를 묶어놓고 객실로 향한다.
시장이 따로 없다. 3등실이라 뭐 어쩔수 없지만.
게다가 혼자 있으니 너무 심심하다.
다시금 주차장으로 내려가 튜브를 꺼내서 너덜너덜해진
뒷바퀴 튜브를 갈아본다.
그래도...
심심하다...
뭐라도 먹고 사우나나 해볼까 해서 식당으로 향한다.
악!
카드따윈 안받는단다.
주머니에 꼴랑 삼백원있는데.
저녁도 먹어야 하는데.
몸에서 땀냄새도 나는데.
정신이 혼미해진다.
모든걸 포기하고 시끄러운 선실을 벗어나 갑판으로 향한다.
유럽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위엄...
푸르른 바다.
모든게 한적하기만하다.
북적거리는 객실 보다는 제주의 여운을 즐기기 위해 갑판 벤치에 누워본다.
잠깐 누워있는다는게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차가운 공기와 빗방울이 볼을 스친다.
어느새 날씨가 흐려졌다.
비도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너무 배가 고프고 추워서 마지막 남은 삼백원으로 코코아를 뽑아먹는다.
배에서 사우나와 저녁식사를 해결하려 했건만...
삼백원으론 택도 없다.
안그래도 땀도 흘렸는데 비까지 맞으니 몸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추우니 객실에 들어가긴 해야겠고
어쩔수 없이 입고있는 옷을 빨래라도 해서 다시 입기로 한다.
(빨아놓은 옷이 다 안말라서...)
불쌍하게 빈화장실에서 상의 탈의를 하고 빨래를 시작한다.
배안에서는 아주 그냥 비참함의 연속이구나...
그렇게 빨래를 하다보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꼭 짠 옷을 말릴겸 갑판으로 나가본다.
배에도 조명이 켜지고 어느새 목포항이 보인다.
젠장 옷도 다 안말랐는데.
게다가 비도온다...
어차피 오늘 서울가는건 상황상 불가능 하기때문에 목포에 있는
외삼촌댁에서 하루 묵기로한다.
배에서 자전거를 끌어내리니 비가 다시금 시원하게 내린다.
짜증날 법도 한데 비가 시원하게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설레기 시작한다.
레인커버를 단단히 씌우고.
다시한번 페달을 힘껏 밟아 본다.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으니까.